자려고 누워 가만히 있다보면 잠상이 어릿거려 기억인지 추억인지 모를 공간을 헤매다 불현듯 손발 로그아웃시키는 오글오글 민망한 기억을 슥- 핥는 순간이 있다. 헛웃음을 터뜨리면서 배게를 주먹으로 때리면서 긴새벽 스스로를 한참 달래야 할정도의 파괴력을 지닌 몇가지 사건들이 있는데 위 노래를 듣다 떠오른 일례를 하나 들어보자면..
고등학교시절 힙합을 좋아하는 친구와 학교축제때 2인조 랩을 했던 적이 있다. 다니던 곳이 지역에서는 나름 명문고등학교이고 놀만한 문화여건도 부족한지라 학교축제는 곧 지역축제여서 여학교 학우들, 동네 이웃, 이장님 딸, 동네노는형 가릴 것 없이 몰려오는 무시할 수 없는 정통을 지닌 축제였다. 사정이 이렇기도 하고 내 생애 처음 공연(?) (물론 마지막이기도 한...)이었기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무대위에 섰는데 아차, 난 그때 처음으로 내게 무대공포증이 있다는 걸 알았다.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머리맡에서 사정없이 내리쬐는 헤드라이트와 그 빛에 반사되어 암흑의 객석에 무수히 빛나는 눈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에 오금이 저렸다. 날개옷 입고 하늘로 승천하려는 정신줄을 부여잡고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간주에 맞춰서 간신히 랩을 하는데 반주에 묻혀 우리의 목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음향체크 따위 밥말아먹으라그래! 라고 하면서 공연전에 후배들이 시켜준 탕수육이나 주워먹고 있었던 내가 증오스러워졌다. 객석을 보니, 기대를 머금어 +_+ 이랬던 눈들이 ?_? 이렇게 바뀌더니 -_- 이렇게 바뀌었다. 동네노는형에게 빌려온 제대로 힙합한 똥싼 바지의 벨트가 풀어지면서 바지가 흘러내렸다. 한손엔 MIC 다른 한손은 바지춤을 부여잡고 어기적어기적 거렸다. 남몰래 사모하던 앞집식당 누나가 같이온 친구들과 강당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위액 Ph농도가 점점 떨어지고 공연전에 먹은 우황청심환이 지붕뚫고 리버스할 기세. 공연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어져서 그저 무대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맘에 1절이 끝날때쯤 나는 친구에게 그만 끊자는 절박한 눈빛을 수신호 했는데 친구는 반짝이는 눈으로 이렇게 말했다.
'재구야 너의 가장 영광스러운 시절은 언제였냐? 야동을 처음목도했을때였냐? ...나..난, 지금이다!'
흡사 방언을 쏟아내는 모양새로 몰입해 있는 친구의 임계량 초과한 행복을 개가 똥을 끊듯 잘라낼 순 없었다.
그저 어깨를 두드리며,
[이봐 친구, 니가 지금 교장 엉덩이에 몽고반점을 봤다고 소릴 질러도 아무도 듣지 못한다고. 넌 지금 흡사 애인 앞에서 방귀가 나올 것 같아 그 소리를 무마하고자 '사랑해!!'라고 크게 외치면서 방구를 뀌었는데 애인이 말하길, '뭐라고? 미안해 방구소리때문에 못들었어-' 의 상황과 다를 바 없다고. 객석의 차가운 눈빛을 봐. 우린 그들에게 사랑이란 단어를 4여분의 랩핑으로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들의 눈에 우린 지금 입술로 방구를 뀌고 있는거야.] 라고 하고 싶었다.
심적고자가 되어버려서는 어차피 들리지도 않은 목소리 에라 모르겠다 2절까지 후딱 부르고 내려가자 싶어 기계적으로 입술을 움짝거리는데 갑자기 친구가 흥에 겨운 표정으로 내 쪽으로 슬근 오더니 바지춤을 잡은 내 손을 부여잡고는 번쩍 들어올렸다. 마침 그때의 가사가 'Love & Peace~Yo!!' 로 기억한다.
내 바지를 중력에 순응했고 내 엉덩살을 양볼에 가득머금은 깜찍한 스누피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축제가 끝나고 축제의 분위기에 기여한 '공로상'에 내 이름이 호명 되었지만 그때 난 학교 화장실에 쭈그려 앉아 눈인지 땀인지 침인지 모를 것들을 묵묵히 훔치고 있었다.. 그래. 어른이 된거다.
...
오늘도 잠자긴 글렀다. 아아..

덧글
뎁 2009/11/20 11:07 # 답글
음 사실 거의 마지막부분까지 읽었을때는 살짝 귀여움??을 느끼면서 웃었는데딱 마지막 문단 읽으면서.. 슬픔도 느껴졌어요...(ㅋㅋㅋㅋ)
그때는 창피하고 그랬어도, 지금 생각해보면 왠지 가슴따뜻하면서, 웃음이 픽픽나오는 소중한 추억이 되셨을 것 같은데 - 이건 너무 제3자 입장인가요?? ㅎㅎ
개인적으로 힙합장르쪽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eversoul님의 그때의 그 무대를 직접 봤으면 좋았을껄 하는 생각입 듭니다 ㅎㅎ
eversoul 2009/11/20 16:57 #
따듯..아닙니다. 절대아니예요. 아직까지도 생각날때마다 '끄아-' 소리를 내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발버둥 치게 만드는 추억이예요. T ^T);;그때이후로 힙합계에서 손을 털었.